불성실한 진료
7386
2008-11-19
 의뢰인에게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었습니다. 의뢰인의 아들은 맹장수술을 받고 회복실에 옮겨진 후, 12시간이 경과하도록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는데 병원 의료진은 환자가 의식을 회복하고 있지 못하는데도 아무런 처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사망한 후에 부검을 해보니 ‘소뇌 동정맥기형으로 인한 소뇌 출혈’로 사인이 밝혀졌습니다. 의뢰인으로서는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는 일인데요.... 법적으로 의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사실 맹장수술은 아주 간단한 수술입니다. 하지만 국소마취가 아니라 전신마취를 한다는 점에서 환자가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의료행위이긴 합니다. 이 사건에선 실제로 성공적인 맹장수술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신마취를 한 환자였다는 점이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수술을 끝낸 의사는 피곤하다며 바로 퇴근했습니다. 일반병실에 누워있던 환자는 점점 의식을 잃어가고 있는데도 담당 간호사는 “마취가 덜 풀려서 그래요.... 잠깐 기다리세요....”라며 환자를 방치했습니다. 여덟 시간이 지난 후 보호자가 의사를 불러줄 것을 요청했지만 의사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끝내 환자는 열다섯 시간 동안이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었다가 사망했습니다. 부모들은 눈물을 머금고 망인을 부검하겠다는 동의서에 싸인했는데 놀랍게도 망인의 사망원인은 소뇌 동정맥기형에 의한 소뇌출혈이었습니다.


동정맥기형이란 동맥과 정맥 사이에 정상적으로 있어야 할 모세혈관이 없어 혈액이 동맥에서 직접 정맥으로 흐르는 일종의 혈관기형으로, 이로 인해 뇌출혈이 발생할 확률이 높으며, 사망률은 약 75% 정도입니다. 이 사건에서 의료과실이 입증된다 하더라도 과실행위와 사망간에 인과관계가 없으면 의사들 책임이 부정됩니다. 이 사건도 오비이락인 것 같습니다. 환자를 방치한 의사들의 과실이 사망의 원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병원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까요? 아닙니다. 법은 의료전문가만의 향유물이 아닙니다. 같은 시대에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관찰능력과 판단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약속이 법입니다. 환자를 방치하고 일찍 퇴근한 주치의, 의사를 불러달라는 가족들의 요청을 묵살한 간호사, 죽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던 부모....

병원은 수술 후 망인의 의식불명 상태를 제대로 관찰하지 않고 방치한 잘못이 있으며, 이로 인해 망인의 부모들은 적절한 최선의 치료를 받지 못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습니다. 따라서 병원은 부모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인과관계가 없더라도 의사가 최선의 처치를 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면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만큼은 배상해야 한다는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 재판부가 얼마나 고심을 하고 판결을 내렸는지는 판결문 행간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병원은 여관이 아닙니다. 환자에게 병실만 제공하는 병원은 앞으론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