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증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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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9

분만과정에서 만기태아심박동감소를 보이며 태아곤란증이 나타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병원은 태아곤란증을 방치했고, 신생아는 장시간 저산소증 상태에 빠져 태변흡입을 심하게 한 채로 분만되었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신생아는 주의깊은 진찰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저산소성 뇌손상을 받아 현재 뇌성마비 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 간호기록에는 신생아의 맥박을 확인하였다는 기록만 있을 뿐 그 결과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신생아에 대하여 산소를 공급해 주었다는 사실만 기재되어 있을 뿐 산소포화도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었습니다. 또 산모에 대한 간호기록에는 다섯 번이나 전자태아감시장치를 부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었지만 태아안녕검사지를 보면 세 번만 부착한 것에 불과했고 부착 시각도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출산 직전에 부착한 전자태아감시장치의 출력물은 법원에 제출되지도 않았습니다. 이 의뢰인은 의료사고로 인한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 있을까요? 대법원까지 간 실제 사건입니다. 입증방해 문제로 접근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의료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소송도 다른 소송과 구조는 비슷합니다. 의사의 불법행위책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의료상의 주의의무위반과 손해 발생이 있고, 그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다만 의료현장의 특수성, 즉 제3자가 경험할 수 없는 의료기관 내에서 발생하는 사고라는 점을 고려해서, 먼저 환자측에서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두고 일련의 의료행위과정에 의료상의 과실있는 행위가 있었고 그 행위와 손해사이에 다른 원인이 개재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합니다. 즉 인과관계의 입증에 한해서는 입증책임이 완화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의료소송의 또 다른 특징인 증거의 편재현상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 어느 증인의 증언도 믿을 수 없는 의료소송에서 피해자가 제시할 수 있는 증거는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의료진이 직접 작성한 진료기록부가 주된 증거일 수밖에 없습니다. 진료기록부는 의사의 과실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증거입니다. 따라서 의료소송에서 의사가 진료기록을 변조하여 소송에 증거자료로 제출하는 경우에는 입증방해의 문제로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자! 그러면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일까요? 입증방해에 대한 제재의 효과에 관해서는 학설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법관이 자유심증의 범위 내에서 입증자의 주장의 진위를 자유롭게 평가하는 것이라는 자유심증설과 입증을 방해한 경우에는 입증책임이 상대방에게 전환된다는 입증책임전환설의 대립이 그것입니다. 판례와 다수의 견해는 전자, 즉 자유심증설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의사가 모든 증거를 독점하고 있는 의료소송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 볼 때, 입증책임의 전환을 통하여 환자의 불이익을 조정할 수 있는 입증책임전환설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견해에 의하든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법정에서 입증방해가 입증된 사건은 그야말로 어이가 없을 정도로 진료기록을 변조한 경우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료기록변조 자체를 피해자측에서 입증할 수가 없습니다. 진료기록은 의사가 일방적으로 밀실에서 작성하고 의사에 의해 보관, 관리되며, 소송과정에서야 비로소 증거로 제출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따라서 진료기록의 변작은 마음만 먹으면 너무나도 쉬운 일입니다. 법원은 이런한 현실을 굳이 외면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사자가 대등한 증거 배분 속에서 소송절차를 진행해 나갈 수 있어야만 하는데 입증방해 자체에 대한 입증은 전적으로 봉쇄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피해자가 입증방해 자체를 입증하였을 때는 좀더 강한 효과를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